시대별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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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 ‘유리 외길’ … 끊임없는 변신으로 파도 넘는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2. 07. 22 조회수 635

동일유리는 충북 청주를 대표하는 향토기업이다. 3대를 이어온 장수기업이기도 하다. 매년 적지 않은 이웃돕기성금, 인재양성 후원금 등을 내놓으며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하는 기업이다. 

 

여기까지가 널리 알려진 동일유리에 대한 이미지다. 하지만 막상 방문한 동일유리는 옛 것만을 충실히 이어온 장수기업의 이미지하고는 달랐다. 가족 기업임에도 내부에서 벌어지는 뜨거운 토론, 그 토론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의사결정. 유리라는 한 우물만을 파고 있지만 한 분야에서도 끊임없는 변신을 꿰하며 시장의 변화라는 파도를 넘고 있다. 

 

1940년 청주시 남문로 동일초자점을 시작으로 77년을 이어온 동일유리의 궤적과 함께 김영진(76) 대표이사와 그의 큰아들 김정환(43) 기획이사로부터 동일유리의 역사와 앞으로 비전과 각오 등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 김영진 대표이사가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동일유리 역사와 현재 

 

동일유리는 1940년 청주시 남문로에서 고(故) 김성태 창업주가 동일유리 초자점의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동일유리 초자점은 철물점과 함께 유리도매가 주업이었다. 6·25전쟁 이후 건축 붐이 불면서 건자재와 시멘트 등 건축자재도 취급했지만 여전히 유리와 시멘트가 주력사업이었다. 

 

김 창업주가 1978년 타계하면서 김영진 현 대표가 가업을 물려받으며 2대를 잇는 기업이 됐다. 가업을 물려받은 김 대표는 건축자재 등의 사업은 정리하고 유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국유리공업의 제품을 받아 소매점과 연결하는 도매업을 주로 하던 동일유리는 1990년 복층유리 제조설비를 도입하면서 본격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1992년 창호공사 면허를 취득했고 1994년 확장 이전하며 이태리 카스텔맥사(社)의 제조설비 자동라인을 도입했다.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는 계속 이어졌다. 2007년 청주산단 내 공장을 증축하면서 고기능성 Low-E 복층유리 양산체제를 구축했고 자동유리절단기를 설치했다. 2011년에는 아르곤가스주입 복층유리 설비, 2014년에는 자동주입설비를 도입했다. 유리 한 우물만을 판 결과는 각종 수상으로 돌아왔다. 2006년과 2013년 청주시 유망중소기업으로 선정됐다. 같은해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됐고 지난해 세라믹유공자 산업통장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동일유리는 지난해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 1만㎡ 규모의 제2공장을 신축하면서 경쟁력 강화와 생산성 확대에 나섰다. 이곳에는 아이지스사(社)의 최신형 복층유리 자동 생산라인과 CNC판유리 자동절단기 등이 설치됐다. 오창공장 신축 후 동일유리는 청주산단 내 제1공장에서는 소량 다품종 복층유리, 오창제2공장에서는 고기능성 복층유리의 대량 생산을 통해 사업분야를 넓힐 수 있게 됐다. 

 

 

▲ 동일상사 전경.

▨ 동일유리 결정적 순간

 

6·25전쟁 후 고속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건축붐이 일었다. 많은 건설사와 건설자재 회사들이 성장했다. 동일유리와 같이 철물점 수준에서 시작해 큰 기업으로 성장한 곳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사업분야를 넓히면서 고속·압축성장을 구가하다 뒤안길로 사라진 회사 역시 많다. 

 

김영진 대표는 동일유리의 결정적 순간으로 1978년을 꼽는다. 김성태 창업주가 별세한 이후 동일유리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선택은 ‘유리’ 외길이었다. 유리 한 분야에서 장인정신을 갖고 파고들었다. 김 대표는 “1970년대 동일유리보다 큰 유리회사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고 회상했다. 대부분 회사들이 규모를 키우는데 치중하다 어려움을 겪은데 반해 동일유리는 한 분야에서 꾸준히 성장하는 노선을 택했다. 김 대표는 “동일유리는 한번에 크게 성장한 회사가 아니다. 물속 바위에 이끼가 끼듯이 천천히 성장하다보니 어느새 유리업계에서 상위권에 위치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 동일유리가 청주시에 이웃돕기 성금을 전달했다.

동일유리의 사훈은 ‘바르게 가자’, ‘함께 가자’, ‘앞으로 가자’다. 대부분 회사와 달리 동일유리가 사훈을 기본적인 경영철학으로 이어가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일화가 있다. 김 대표의 장남인 김정환 기획이사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다. 대기업에 근무하던 김 이사는 2003년 가업을 잇기 위해 동일유리에 입사했다. 김 이사는 당시의 모습에 대해 “미국에서 MBA(경영학 석사)까지 따고 대기업에서 근무해 경영에는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이사의 자신감은 곧 시련을 맞는다. 2005년 경기도 화성의 공장 건설현장에 동일유리도 참여했다. 약 4억원의 유리를 납품했다. 그런데 원청 건설사가 무리한 해외투자로 자금난에 빠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른 납품업체들이 상황이 않 좋다며 납품을 중단하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이사는 원청사가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는데 납품을 중단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2억여원을 못 받게 됐다. 하지만 거래처와의 신뢰는 동일유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시간은 걸렸지만 동일유리는 결국 납품대금을 받게 됐다. 원청사 직원들은 뿔뿔이 전국 각지의 회사로 흩어졌지만 신뢰를 지킨 동일유리의 홍보맨을 자처하고 나섰다. 

 

김 이사는 “입사 후 자신감이 넘쳤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를 배웠다”며 “아버지는 그 과정에서 한 번도 질책을 하지 않았다. 시련을 겪고 강해지라는 의미셨던 것 같다. 또 회사의 경영방침과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도 감안하셨을 것이다. 패기가 경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당시 배웠다”고 밝혔다. 

심형식 기자 letsgoh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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